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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티스트 A ~ N/[ H ]

Howlin' Wolf (하울링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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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프레슬리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샘 필립스는 1951년 ' 체스 ' 레코드사를 통해 마흔이 갓 넘은 한 사나이의 음반을 취입하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프로 뮤지션의 궤도에 진입한 이 남자는 과거에 델타 블루스의 전설적 존재인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과는 함께 투어를 가졌고, 찰리 패튼(Charley Patton)을 자신의 삶을 뒤바꾼 결정적 스승으로

떠받드는 인물이었다.

 

블루스 역사는 그 날 이후 실로 위대한 블루스맨의 탄생을 맛본 것이다. 그가 곧 머디 워터스와는 선의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하울링 울프(Howlin' Wolf). 하울링 울프는 머디 워터스와 마찬가지로 일렉트릭 블루스의 황금기를 개척한 일등공신이다. 지금까지도 그의 존재는 엘비스와 척 베리로 대변되는 로큰롤 혁명 시기 이전에 일렉트릭 블루스의 일대 진척을 가져온, 즉 시카고 블루스의 표준을 제시한 블루스 명사로 기억되고 있다. 머디와 굳이 비교하자면 기타 실력은 떨어졌으나 블루스 창법은 오히려 그를 앞지른다.

 

본명이 체스터 버네트(Chester Burnett)인 하울링 울프는 1910년 6월 10일 미시시피주 웨스트 포인트 근교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976년 1월 10일 6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 역시 별칭이 고스란히 이름이 된 케이스. 늑대 울음소리를 닮은 거칠게 노래하는 목소리로 인해 하울링 울프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그의 연주와 노래는 블루스가 하이라이트를 이룰 시대까지 늘 함께 공존하고 번영했다. 실력 좋은 후배들로부터 존경과 귀감의 대상이 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롤링 스톤스가 부른 'Little red rooster', 크림의 장대한 곡 'Spoonful', 도어스가 리메이크한 'Back door man', 레드 제플린의 초기 넘버 'How many more times', 제프 벡이 연주한 'I ain't superstitions' 등 알고 보면 블루스 귀재들의 히트 송 가운데 대다수는 하울링 울프의 오리지널에서 빌려왔다.

 

하울링 울프의 초기 곡이 차트에서 큰 성공을 거둔 데는 20년 이상 한솥밥을 먹은 흑인 기타리스트 허버트 섬린(Hubert Sumlin)과의 콤비 플레이가 결정적이다. 그로 인해 울프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진중해졌다. 하울링 울프가 그를 두고 “

그는 내 음악의 정신적 지주”라 칭찬한 말이 그 사실을 대번 묘사해준다.

 

거기에 작곡자 윌리 딕슨(Willie Dixon)의 가세로 하울링 울프의 음반은 그 무렵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다. 오늘날까지

위대한 블루스 명곡으로 회자되는 'I ain't superstitious', 'The red rooster', 'Shake for me', 'Back door man', 'Spoonful', 'Wang dang doodle' 등은 모두 윌리 딕슨이 작곡한 것들이다. 결국 1950, 60년대 내내 울프의 보컬과 섬린의 기타,

그리고 딕슨이 주조한 곡조와의 연계는 마치 공식처럼 돼버렸다.

 

하울링 울프의 존재와 가치는 1960년대 중, 후반 블루스 리바이벌 붐이 조성되면서 다시금 재조명 받게 된다. 199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새겼으며, 얼마 전 록 전문지 '롤링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큰롤 100인'

순위에 51위로 랭크돼 한번 더 위상을 드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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