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ith No More는 Heavy metal, Funk, Hip-Hop, Progressive Rock 등 퓨전된 독창적 음악으로 대중들의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 1985년 첫번째 앨범을 녹음할 시기부터 밴드는 많은 보컬의 교체가 있었다. Kirt Cobain의 부인이었던 Courtney Love가 이 밴드를 거쳐갔으며, 데뷔 앨범 We Care a Lot에는 Chuck Mosley가 참여하였다.
그런데 이 시기 Faith No More의 음악은 Jim Martin의 메탈적인 기타사운드의 영향이 컸는데,
1987년 작 Introduce Yourself의 결과는 전작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1988년 밴드의 다른 멤버들이 Mosley를 해고하고 Mike Patton 받아들여 다음 앨범 The Real Thing을 준비하였다.
Patton은 좀더 실력 있는 보컬리스트 였다. 노래의 능력에서 뿐만 아니라 Rap과 노래를 자연스럽게 이어갈 줄 알았으며, 개성적인 가사를 들려주었다. 게다가 새로운 보컬의 도입은 밴드의 음악적 향상을 가져왔으며, 이를 증명하듯 싱글 ‘Epic’의 폭발적인 인기로 Faith No More는 메이저의 대열에 낄 수 있었다.
그들의 명성은 Angel Dust[1992]로 이어갔다. 이들의 메이저로 발매된 앨범 중에선 가장 복잡하고 조금은 황당하기 까지 한 이 앨범은 상당한 판매량을 보이긴 했지만, 예전 첫번째 앨범에서의 크로스 오버적인 잠재력 같은 느낌은 받을 수
없다. 기타리스트 Jim Martin과 밴드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여, 그는 1994년 네번째 앨범 King for a Day의 녹음 도중 Tey Spruance로 교체되었다.
또한 다음 투어의 준비 기간동안 새 기타리스트로 Dean Mentia가 들어왔지만 그도 King for a Day의 투어 중 해고되고, Fait No More는 새 기타리스트 Jon Hudson과 작업하여 Album of the Year[1997]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전의 개성을 잃고 평범한 Grunge Rock으로 전락한 이 앨범을 통해, 결국 1998년 4월 Faith No More의 해체가 결정되었다. 1998년에 발표된 Who Cares a Lot Seasick은 Faith No More의 회고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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