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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티스트 A ~ N/[ H ]

Harry Belafonte (해리 벨라폰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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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립소 음악의 제왕이자 존 바에즈(Joan Baez), 밥 딜런(Bob Dylan)등과 함께 당대의 대표적인 저항뮤지션으로 통하던 해리 벨라폰테는 해롤드 조지 벨라폰테(Harold eorge Belafonte)가 본명으로 1927년 3월 1일 뉴욕 할렘(Harlem)에서 태어났다.

자메이카 출신 부모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8세때 어머니와 함께 자메이카로 돌아가 5년동안 거주하였다.
나중 미국 뉴욕에 돌아와서 유년기의 경험을 잊지 못해, 두 팔 걷어붙이고 서인도 제도의 음악 특히 칼립소의 연구와 녹음에 집중했다. 그는 대중스타로 성공한 아프로 아메리칸(Afro-American -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미국 흑인들을 가리키는 말) 중의 한 명으로 기록된다.
그의 음악 장르는 민속 음악과 재즈, 칼립소 등이다. 그는 미국의 민요와 서인도제도의 음악을 결합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1955년 [Mark Twain and Other Folk Favorites]로 데뷔한 이래 줄곧 정치적 성향 짙은 음악세계를 보여왔던 그는 1956년 앨범 [Calypso]로 전미차트에 무려 31주간 정상을 차지하면서 칼립소 붐을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지금도 칼립소를 대표하는 2곡의 명작 "Jamaica farewell", "Day-o(Banana boat)"가 바로 그 음반에 수록되어있다(각각 빌보드 차트 14위와 5위 기록). 이 곡들의 전국적 히트와 함께 해리 벨라폰테에겐 '칼립소의 왕'(The king of Calypso)이란 칭호가 붙었다.

 

 


1959년 그는 클래식 음악의 전당 카네기홀에서 이틀간 정신장애아들을 위한 자선공연을 가졌다. 이 공연을 프로듀스한 밥 볼라드(Bob Bollard)는 벨라폰테에게 '성공 가능성이 있으나 위험한 도박'을 제의한다. 그건 카네기 공연실황을 한번 녹음해보자(다시 말해 실황음반을 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해리 벨라폰테의 공연 가운데 생생한 순간을 가장 잘 포착했다는 평가를 얻은 앨범 [Belafonte At Carnegie Hall]이 나오게 되었다. 2장짜리 LP로 구성된 이 앨범은 벨라폰테 개인의 영광을 넘어 라이브 앨범의 역사에 있어서도 획을 그은 작품이란 더 큰 영광을 수확해냈다.

 

 

당시 가수이자 배우이기도 했던 그만의 청중 흡인력이 공연장의 열기를 타고 전편을 질주한다.

지금으로부터 40년도 훨씬 전인 그 시기에 이런 분위기의 실황앨범이 가능했다는 자체가 놀랍다. 그것이 녹음기술에 힘입음 것이었음은 앨범이 이듬해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엔지니어링 상을 받은 사실로 입증된다.
라이브의 생생함과 관련하여 앨범 마지막 곡이자 공연가수와 객석 상호간의 피드백과 혼연일체가 최고조로 달한 노래 "Matilda"를 잊을 수 없다. 밥 볼라드는 그것을 단적으로 "카네기홀 전체가 노래하고 진동하고있다"고 묘사했다. 이 곡은 국내에서도 1970년대까지 줄기차게 음악다방과 라디오전파를 통해 울려 퍼졌다. 이 앨범은 전미차트 3위와 함께 무려

 

 

 

168주간 즉 3년 동안 차트에 머무르는 기염을 토했다.
해리 벨라폰테가 칼립소와 서인도제도 음악만 전문으로 다룬 건 아니었다. 이 앨범 이전부터, 흑인의 민요를 중심으로 하되 미국인들이 소화 가능한 민요라면 흑백과 국적을 따짐 없이, 입에 붙이고 대중화를 위한 진전을 꾀했다. 미국의 흑인영가 "When the saints go marcing in", 미국 남부의 흑인 블루스 "Cotton fields", 이스라엘 민요 "Hava nageela", 아일랜드 민요 "Danny boy", 멕시코 민요 "Cu cu ru cu cu paloma" 등은 이미 전작들에서 불렀던 노래들이다.
1960년대, 벨라폰테는 당시 완전 무명이었던 남아공 출신의 미리암 마케바를 발굴해 낸 뒤, 음반 [An Evening with Belafonte/Makeba]를 발표하면서 미리암 마케바를 미국 음악 시장에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마케바를 소개하면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던 점은, 왜 해리 벨라폰테를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인권 운동가로서 세계가 인정하는지에 대해 해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 나나 무스꾸리(Nana Mouskouri)의 재능을 알아본 해리 벨라폰테는 나나 무스꾸리에게 음반 작업을 제안한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1966년도에 발매된 불후의 걸작이 바로 [An Evening With Belafonte/Mouskouri]이다.
흑인 음악 및 제 3세계 음악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는 이후 1985년 USA for Africa 운동과 유니세프 친선 대사 자격으로 세계 곳곳을 방문하는가 하면, 로버트 알트만(Robert Altman) 감독의 영화 "캔사스 시티(Kansas City)"에서 암흑가와 밀착한 냉혹한 수전노 역을 맡아 열연하는 등 자신의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 왕성한 스태미너를 뽐냈다.
그는 영화와 드라마에도 다수 출연하며 인기를 더했는데 미국에서 최초로 흑인 TV PD로 활동하며 에미상을 수상하는 재능을 보여주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그는 주로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하는 역할로 유명했다.
또한 그는 미국내에선 일반 팬뿐 아니라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경의와 존경의 대상으로 카네기 홀에서 공연한 최초의 흑인이기도 하다.
이후의 앨범들에서도 플래티넘 마스터피스를 쏟아내었지만 여전히 대쪽같은 모습으로 대중적인 존경을 받고있는 해리 벨라폰테는 지금까지 공연과 레코딩 활동을 통해 꾸준히 대가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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