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1980년대의 팝 음악 씬을 돌아보자면 항상 '소란스러움'이라는 느낌이 먼저 기억된다. 이것은 사운드 자체가
시끄럽다거나 크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니라 당시의 팝 음악 씬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언제나 '가볍다'라는 느낌을 주었다는 기억을 말한다. 시대가 만들어내는 진지함을 피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던 1960-70년대와 달리
본격적인 소비 문화가 꽃을 피우던 1980년대는 항상 흥청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던 음악들 속에서 진지함이나 심각함을 찾아보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Wham과 듀란 듀란(Duran Duran), 컬쳐 클럽(Culture Club)과 마돈나(Madonna), 신디 로퍼(Cyn야 Lauper)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시대였던 1984년에 등장했던 샤데이(Sade)의 모습은 너무나도 색달랐다.
이 밴드가 만들어 내던 사운드와 팀명이 똑같이 샤데이라고 불리는, 헬렌 폴세이드 아두(Helen Folsade Adu)라는
여성 보컬리스트의 목소리는 LP 한 장이 다 돌아간 뒤에도 이상하게도 계속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다. 동그란 이마에
커다란 입술과 눈망울을 지닌 이 혼혈의 여인의 출생에 관한 얘기도 언제나 화제가 되곤 했다. 나이지리아인 이었던
아버지와 영국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던 중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가서 정착했다는 이 여인이 만들어내던 이상스럽게도 고혹적이고 슬픈 이미지는 한번 보면 좀처럼 잊히지
않는 것이었다.
그 후 패션을 공부하던 샤데이는 몇몇 밴드들에서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다가 음반사들의 주목을 받고 팀을 대표
하는 프론트우먼으로 계약을 맺게 된다. 하지만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은 샤데이를 단지 한 명의 여성가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카리스마와 흡입력이 너무나 강했던 결과였다. 이후 샤데이가 만들어냈던 성공은 한마디로 기이할 정도였다. 1984년에 발표되었던 데뷔 앨범인 [Diamond Life]는 'Your Love Is King', 'Smooth Operato', 'Hang on To your Love' 등의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단지, 히트곡들을 쏟아냈던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샤데이라는 밴드가 만들어내던 이국적인 사운드(최근에 우리는
이러한 사운드에 적합한 용어를 많이 쓰고 있다. '에쓰닉(ethnic)'이라는…)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촉촉하게 젖은 듯한
습기 어린 보이스칼라가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었다.
샤데이의 음악은 전혀 자극적이지도 않았고 동시대 음악들이 대부분 그러했던 것처럼 요란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앨범은 차트 밖으로 내려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이것은 이후 나온 모든 샤데이의 앨범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징이 되었다.
1985년에 발표되었던 [Promise]에서는 'Never As Good As The First Time'과 'Sweetest Taboo'가 터져 나왔다.
특히, 'Sweetest Taboo'는 샤데이 음악의 전반적인 형태를 결정짓는 밴드와 그녀의 대표곡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읊조리는 듯한 분위기로 극단적이지 않으면서도 무한의 슬픔을 표현해내는 수작이었다. 샤데이의 팬들은 점점 더 밴드와
그녀에게 끌리게 되었다. 샤데이의 음악은 어떤 상황이나 어떤 분위기에서도 잘 어울렸다. 일면, 늘어지고 또 한편으로는 밝지 않은 분위기의 음악들이 거부감 없이, 어렵다는 느낌 없이 계속해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1988년의 [Stronger Than Pride]에서도 꾸준히 'Love Is Stronger Than Pride', 'Nothing Can Come between Us'같은
히트곡들이 나왔다. 이전의 늘어지기만 하던 샤데이의 보컬이 이 앨범에서는 약간은 소울풀하고 블루지한 힘을 가미한 창법으로 바뀌는 시도를 한 부분도 있었지만 역시 전체적으로 샤데이의 팬들에게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앨범이었던 이 작품도 간단히 플래티넘을 넘기며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리고, 샤데이는 4년 동안의 첫 번째 잠행을 행한다. 그녀가 그 4년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는 평소의 그녀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자세히 알려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보인다. 이렇게 그녀와 그녀의 밴드인 샤데이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고 있던 1994년 샤데이는 가장 아름다운 앨범인 [Love Deluxe]로 씬에 복귀한다.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은 한마디로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훌륭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묻어있던 습기의 자욱은 이 앨범에서는
많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건조한 듯 변한 것 같던 그녀의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드러내지 않는 슬픔의 표현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전에 발표되었던 어떠한 앨범보다 훨씬 더 큰 슬픔을 담은 앨범은 여전히 식지 않은 그녀와 밴드 팬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특히, 이 앨범에 담긴 'Pearls'라는 곡에서 나타난 인간에 대한 슬픔과 연민의 감정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샤데이는 자취를 감췄다. 정말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던 것이다. 물론,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꾸준히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치기도 했지만 샤데이 본인은 거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샤데이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그녀가 지난 8년 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세세
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단지, 그녀가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것과 아이를 낳았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40세가 넘은 나이가 됐다는 사실들만이 확실할 뿐이다. 하지만, 언론을 극도로 싫어하고 대인기피증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한다는 항간의 보도와는 다르게 그녀는 "단지 언론에 노출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 사람들을 피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면서 오히려 사람들과 더욱 가까이 함께 있었을 뿐이라고 덧붙인다.
사실, 샤데이는 언론에 음악과 자신의 밴드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인터뷰를 위한 여하한 접촉을 고사하는 것으로 유명
하다. 이러한 자세에서 그녀가 바라보는 것과 대중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오로지 자신의 음악뿐이라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그녀를 좋아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밴드를 기다렸지만 8년이라는 세월은 그다지 짧지 않았다.
음악계의 흐름은 마구 변해갔고 1980년대의 영화를 노리고 복귀했던 많은 스타들이 나자빠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샤데이가 음악계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조용히 그녀를 기다리며
인터넷에 팬페이지들을 꾸며오던 팬들은 신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샤데이의 팬들은 그 응집력이 무척이나 강하고
그들의 음악 스타일처럼 팬 층의 한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샤데이의 음악은 연령도, 인종도, 종교도 초월해서 좋아
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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