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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티스트 A ~ N/[ J ]

John Lennon (존 레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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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Lennon (존 레논)

 

 

존 레논이란 아티스트를 말하면서 비틀즈를 말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존 레논의 음악적 성취란 것은 비틀즈 시절에 이미 모든 것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후 솔로로 독립하여 활동한 존 레논의 음악들 역시 아름답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새로운 것을 보여주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동그란 안경테 속에 평범한 모범생 혹은 길다란 얼굴에 다소 몽롱해보이는 눈동자의 존 레논(John Lennon)을 

우리가 기억하고 사랑하게 되고, 그를 신비로운 인물, 반전운동가 등으로 기억하게 만든 것은 역시 비틀즈(Beatles)의 

멤버로서가 아닌 존 레논이란 한 명의 솔로 아티스트였다.

영국 리버풀 노동 계급의 결손가정에서 태어나 철저하게 음악에 몰두한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정치적인 

이념과 사상을 반영하기도 했던 존 레논은 지극히 자기 고백적인 가사에 선율이 아름다운 곡들로 그 작곡 능력을 인정

받았지만, 동시에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은 로큰롤 음악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실력에 안주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때문에 그는 비틀즈에서의 엄청난 업적에 비해 솔로로서의 활동은 비교적 간과되기도 했다.

비틀즈의 폭발적인 성공으로 이미 상업주의의 최고봉에 올라있었을 당시에도 그의 반전주의적이고 기존 권위에 대한 

적개심은 여전했으며, 66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비틀즈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유명하다'라는 발언을 함으로써 

한때 기독교도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비틀즈 활동 중에도 솔로로서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존 레논은 68년, 그의 연인이자 아방가르드 아티스트인 

오노 요코(Ono Yoco)와 실험적인 사운드로 이루어진 [Unfinished Music, No. 1: Two Virgins]를 발표했다.

두 사람의 누드를 실은 앨범 자켓으로 심각한 물의를 일으킨 이후 그는 요코와 결혼하고 그들의 신혼 여행지인 

암스테르담에서 반전시위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에 반전사상을 담은 'Give Peace a Chance'를 포함한 [Unfinished Music, No. 2: Life with the Lions and The Wedding](69)을 발표한 그는 우노와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베이시스트 클라우스 부먼(Klaus Voormann), 

드러머 알란 화이트(Alan White)와 함께 플라스틱 우노 밴드(Plastic ono Band)를 결성해 'Cold Turkey'를 발표하지만 

미국과 영국 어디서도 톱 텐에 오르지 못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받은 MBE 훈장을 반환하고 영국과 미국의 비아프라(Biafra), 베트남 참전에 항거한 존은 요코와 함께 12개 도시를 다니면서 'War Is Over! (If You Want It)'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평화를 위한 캠페인을 지속한다.

70년 'Instant Karma'로 UK/US 차트 10위에 오르면서 히트를 하게 된 그는 폴의 비틀즈 해체 발언에 분노해 [John Lenon/Plastic ono Band]라는 정식 솔로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71년 또 다른 국가 부정적인 사상을 담은 싱글 'Power to the People'을 발표한 그는 그해 가을 [Imagine]을 선보인다. 

타이틀곡으로 히트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은 다시 정치적인 활동가로 돌아가 아비 호프만(Abbi Hoffman), 

제리 루빈(Jerry Rubin)같은 미국의 급진주의자들을 옹호했고, 72년 뉴욕 히피밴드 엘러펀츠 메모리(Elephant's Memory)와 더블 앨범 [Sometime in New York City]를 발표했다. 그러나 정치사상을 담은 곡들로만 이루어진 이 앨범은 그 단순함으로 혹평을 받았고, 저조한 판매고를 보임은 물론 그의 명성에도 손상을 가했다.

이후 마리화나 소지죄로 미국 영주권이 거부되고 74년 오노와 이혼하게 되면서 LA로 거주지를 옮긴 레논은 

소위 'lost weekend'라 불린 1년 반 동안의 방탕한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도 존의 음악 작업은 계속되었고, 74년 'Whatever Gets You Through the Night'라는 엘튼 존(Elton John)과 공동 작업한 곡으로 히트를 기록한 [Walls and Bridges]를 발매한 후, 그는 다시 오노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가졌다.

75년 [Rock & Roll]을 발매하고 76년 영주권 획득 이후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앨범에 참여한 존은 이후 음악에 

손을 떼고 가사 작업에 매진한다. 1980년 오랜 침묵을 깨고 게펜 레코드사(Geffen Records)와 계약을 맺은 

그는 [Double Fantasy]를 발매해 호평을 얻고 앨범과 싱글 '(Just Like) Starting Over'를 나란히 차트에 올린다.

그러나 새로운 활동으로 재개한 그의 창창한 앞날은 80년 12월 8일 암살자 마크 데이비드 채프만(Mark David Chapman)의 총격에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비록 비틀즈 이후 존 레논의 음악은 상업적 가치와 예술적인 완성도 면에서 그다지 뛰어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록 스타로 자리매김한 70년 초 혁명적인 활동가로 정치시위에서 TV 토크쇼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과 사회사상을 반영함으로써 음악과 삶에 있어 극단을 취했던 그는, 사후 약 25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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