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O 스피드웨건은 67년 일리노이 주립대학에 재학 중이던 룸메이트, 닐 도허티와 앨런 그래처가 함께 음악 활동을 시작하면서 시작되었으며 그후 3,4년간 수많은 이들이 거쳐가면서 당시까지만 해도 일리노이주에서는 낯선 뮤지션들이던 도어스(Doors)에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을 카피하는 등 밴드의 틀을 서서히 잡아갔다. 그후 71년, REO 스피드웨건은 도허티, 그래처, 그렉 필빈, 테리 러트렐, 게리 리치래쓰의 라인업으로 셀프 타이틀의 데뷔앨범인 [REO Speedwagon]을 발표하였다.
곧이어 러트렐이 탈퇴함에 따라 작곡과 보컬을 겸한 케빈 크로닌이 가입하였다. 크로닌과 리치래쓰는 팀을 이루어 왕성한 창작력으로 줄줄이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들을 발표하게 되는데, 71년부터 81년에 이르기까지 단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매년 한 장씩의 앨범을 발표한 것만 보아도 이들의 창작열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90년, 게리와 앨런이 밴드를 떠남에 따라 REO 스피드웨건은 새로 가입한 데이브 아마토와 브리이언 히트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다.
REO 스피드웨건은 '음악의 뿌리에 다가간 파워 발라드'로 표명되는데, 이들의 11번째 앨범으로 81년에 발표한 [High Infidelity]는 전세계적으로 9백만 장 이상이 팔리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앨범에서는 모두 4개의 곡이 Top 25 히트를 기록했으며, 'Keep on Lovin' You'와 'Take It on The Run'은 각각 1,2위에 올랐다. 한편, 이로부터 5년 뒤에는 'Can't Fight This Feeling'이 빌보드 Hot 100 차트의 1위까지 오름으로써 록계에 REO 스피드웨건의 명성을 재확인했다.
한편, 96년 이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발라드와 록을 골고루 수록한 [Building The Bridge]의 발매에 이어 밴드 결성 25주년 기념 전미 순회투어를 포리너(Foreigner), 피터 프램튼(Peter Frampton)과 함께 97년 여름까지 계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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