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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티스트 A ~ N/[ K ]

Kool & The Gang (쿨 앤 더 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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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앤 더 갱(Kool and The Gang)은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Fire)와 함께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펑크

(funk) 밴드다.

 

이들은 디스코, 소울, 리듬 앤 블루스, 펑크(funk), 록을 마스터한 흥겨운 20곡 이상을 빌보드 싱글 차트 40위권 내에, 40여 곡을 흑인 음악차트에 쏟아내면서 당대 최고의 흑인 그룹으로 공인 받았던 9인조 대형 밴드이다.

 

1980년대에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의 '가장 훌륭한 댄스 그룹'이라는  평가와 '이들의 행복한 노래는 즐거운 휴가와 같다'고 한 스테레오 리뷰지의 묘사처럼 'Celebration'과 'Cherish'는 잊혀지지 않는 애청곡으로 자리했다.

 

뉴저지 주(州)에서 생활의 기반을 닦던 로버트 벨(Robert Bell/베이스)과 로날드 벨(Ronald Bell/색소폰, 키보드)

형제는 재즈광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재즈에 깊이 심취하게 되었다.

 

이들은 1964년에 데니스 토마스(Dennis Thomas/색소폰), 로버트 미킨스(Robert Mickens/트럼펫)와 함께

재즈 매니아라는 의미의 재지악스(Jazziacs = Jazz + Maniacs)라는 팀을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에 찰스 스미스(Charles Smith/기타), 우디 스패로우(Woody Sparrow/기타), 클리포드 아담스

(Clifford Adams/트롬본), 리키 웨스트(Ricky West/키보드), 조지 브라운(George Brown/드럼)이 합세해 세를 불린

이들은 밴드 이름을 로버트 벨의 애칭인 'Kool'을 붙여 쿨 앤 더 갱으로 개명한 후 당시 흑인 음악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소울, 펑크(funk) 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과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and The Family Stone)을 의식한 이 '조직'은

1970년대를 활짝 열며 음악계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이 갱단(?)은 1970년대 초반에 'Funky stuff(29위)'와 'Jungle boogie(4위)', 'Hollywood swinging(6위)' 등이 히트를

기록하면서 흑인 음악의 신진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초기 디스코의 원형과 소울, 펑크(funk)가 중심을 이룬 이 곡들은 초기 쿨 앤 더 갱의 입지를 다지는데 결정적이었다.

특히 'Hollywood swinging'의 도입부는 랩퍼 메이스(Mase)의 1997년도 히트곡 'Feel so good'에 고스란히

대물림되어 힙합이 펑크(funk)의 직계 후손임을 인정했다.

쿨 앤 더 갱은 자신들의 곡 'Open sesame(55위)'이 수록되어 있는 사운드트랙 음반 으로 그래미 올해의 앨범을

수상했지만 본격적인 디스코 시대가 도래하자 이 대형 식구는 조타수를 잃은 배처럼 음악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중심을 잃었다.

 

소울과 초기 디스코 스타일이 남아있는 이들의 음악이 1970년대 후반의 세련되고 정제된 디스코 감각에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자신들이 발표한 곡들은 1970년대 후반의 디스코 곡들에 비해 춤추면서 즐기기 힘들었다.

이들은 좀 더 흥겹고 쉬운 밴드로 자신들을 낮추어야 했다. 그들은 참신한 보컬리스트 영입과 새로운 프로듀서와의

협력을 처방전으로 택했다.

 

쿨 앤 더 갱은 1973년에 'Also sprach Zarathustra'를 퓨전 재즈 풍으로 편곡해 2위까지 올린 브라질 뮤지션 데오다토

(Deodato)를 프로듀서로, 그리고 백보컬리스트 출신의 제임스 “J. T.” 테일러(James “J. T.” Taylor)를 간판 목소리로

앉히는 일대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전성기를 가져온 이 체제가 처음으로 공개한 1978년도 음반 부터 1982년의 까지 이들은 'Ladies' night(8위)',

'Too hot(5위)',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영원한 축가 'Celebration(1980년 이란 주재 미대사관에서 억류되었던

미국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했을 때 공항에 울려 퍼진 곡)', 힙합 요소를 첨가한 'Get down on it(10위)', 'Big fun(21위)'

처럼 멋진 곡들을 배출하면서 본격적인 댄스 밴드로 거듭났다.

 

랩퍼 쿨리오(Coolio)는 자신의 두 번째 음반에 'Too hot'을 리메이크 해 펑크(funk)와 힙합의 연계성을 확인해 주었다.

1983년 연말에 공개된 에서는 국내에서도 은근한 사랑을 받은 편안한 트랙 'Joanna(2위)'와 'Tonight(13위)'가 인기를

이어갔고 1984년의 는 춤추기 안성맞춤인 'Fresh(9위)'와 'Misled(10위)', 'Emergency(18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애청되고 있는 발라드 'Cherish(2위)'를 잉태하면서 최고의 흑인 밴드로 우뚝 섰다.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의 경계선이 무너지던 1980년대, 쿨 앤 더 갱도 이 시대적 문법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록과 펑크(funk)가 어울린 'Tonight'와 'Misled', 'Emergency', 그리고 아름다운 연가(戀歌) 'Cherish' 등은

백인들에게 검은 음악의 저변 확대에 공을 세웠지만 정통 흑인 음악 팬들로부터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한편 미국 밴드인 쿨 앤 더 갱은 영국 뮤지션들과 함께 1984년에 이디오피아의 기아 난민들을 위한

'Do they know it's Christmas' 녹음에 참여해 소중한 온정을 보여주었다.

 

'Victory(10위)', 'Stone love(10위)', 'Holiday(66위)', 'Special way(72위)'가 싱글 히트한 1986년도 앨범 는 이 조직이

인기 순위에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작품이다.

이 음반을 끝으로 그 동안 동고동락해왔던 보컬리스트 제임스 “J. T.” 테일러는 음악계 생활을 접고(영화 "맘보 킹"에

카메오로 출연) 새로운 목소리인 개리 브라운(Gary Brown)을 맞이해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했지만

옛 영광을 재현하는데 실패했다.

 

흑인의 자긍심과 영혼을 싸구려 댄스 음악으로 포장해 팔았다는 혹평을 들었던 쿨 앤 더 갱. 그러나 이들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는 MC 해머(MC Hammer)와 윌 스미스(Will Smith)처럼 유쾌한 후배들에게 대물림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갱단(?)이 섹스와 마약, 그리고 폭력으로 일그러진 힙합 세계의 밝은 면을 부각시켰다.

쿨 앤 더 갱은 이 세상의 모든 조폭들 중에서 가장 흥겹고 귀여운(?) 갱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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