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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티스트 A ~ N/[ L ]

Loretta Lynn(로레타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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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etta Lynn(로레타 린)



As soon as I hang up the phone이라는 노래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컨트리뮤지션 Loretta Lynn은 1935년 4월 14일,

켄터키주 존슨 카운티에 있는 작은 마을 뷰처할로우에서 8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12살이 되기까지는 교회나 지역 콘서트에서 노래부르곤 하다가, 나이 13살에 Mooney Lynn과 결혼을 하였고,  결혼 몇달

후에 남편Mooney와 오빠Jay는 길거리에서 손을 들어 남의 차를 얻어타고 일자리를 찾아서 함께 멀리 워싱턴주로 떠났다고 한다.

임신을 한 13살 로에라는 남편 Mooney가 돈과 기차표를 보내줄때까지 여러달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새로운곳

워싱턴주에 정착한 14살의 로에라는 첫 아기를 출산하였고, 어머니와 주부로서 그녀는 대중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그만두는

대신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줌으로써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발산했다.

그무렵 해마다 아이를 낳아 17살인 로에라는 4명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아내의 노래실력에 감탄한 남편 Mooney는

로에라가 18살 되던 생일날에 기타를 선물하였고,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지 불과 몇 달만에 스스로 작곡할 정도가

되었으며,  남편의 격려로 지역 밴드에 소속되어 주말마다 노래하기를 시작했다.

남편 Mooney가 로에라를 지역 장기자랑에 내보냈는데, 그건 로에라에게 획기적 전환점이 되었다.

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Buck Owens로터 그의 TV쇼에 출연해 달라는 개인적인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출연은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Zero레코드사의 관심을 받게 되어 녹음제의를 수락하고는 LA로 날아가서, 

그녀의 자작곡인 첫 싱글 "I'm A Honky Tonk Girl"을 1960년에 녹음했다.

Zero레코드사는 그녀의 첫 싱글을 흥행시킬 만한 돈이 없는 아주 작은 회사였으므로 남편 Mooney가 흥행을 맡기로 결심하고, 

무니와 로에라는 방송국 소유자와 디스크자키들에게 녹음한걸 우편으로 보내고는 짐을 챙겨서 가족을 이끌고 내슈빌로 떠났다.
그들이 내슈빌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노래는 벌써 힛트되었으며,  차트 14위 까지 올랐다.

이듬해인 1961년, Grand Ole Opry에 정기 출연하게 되었으며,  앨범이 차트 1위까지 오르게 되었고, 단시간에 떠오르는

내슈빌의 샛별로 각광받게 되었다.

이후 약 10년간 내어놓은 홍키통크곡 마다 톱10에 드는 대힛트를 기록하게 되었고,  66년 부터는 자신이 직접 쓴 곡들을

내어 놓았는데 4년간 13곡이 톱10리스트에 올랐으며 최고의 컨트리 뮤지션 이라는 찬사를 받게 되었다.

1970년에 로에라는 Golden Album을 받은 최초의 여성 컨트리아티스트가 되었으며,  Conway Twitty와 파트너가 되어

5곡이 힛트하는 성공을 거두었고,  CMA(Country Music Association)로부터 올해의 듀오상을 받았뿐만 아니라 톱10

힛트곡 7곡을 더 내었다.

로에라는 두권의 자서전을 집필했는데,  1970년에 쓴 "Coal Miner's Daughter"는 6년후에 The New York Times가 선정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1973년 로에라는 Newsweek지 표지로 선정되는 최초의 여성 컨트리아티스트가 되었고,  자서전

Coal Miner's Daughter는 1980년 영화로 만들어져서 대찬사를 받았다.    로에라 역할을 했던 배우 Sissy Spacek가

오스카상을 받기도 하였고 영화주제곡이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1980년대 로에라는 자서전과 영화로 인해 큰 인기를 얻었지만 어머니와 한 아들을 잃는 슬픔을 겪으며 자연 음반을 내어놓는 일에는 부진했으며 공연활동을 주로 하였다고 한다.

1993년에는 컨트리음악의 전설 Tammy Wynette및 Dolly Parton과 함께 불후의 명앨범 "Honky Tonk Angels"를 내어놓게

되었지만 불행히도 그해에 파트너 Conway Twitty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병으로 고생하던 남편 Mooney를 보살피느라

음악활동을 하지 못하던 도중에 96년 남편 마저 지병으로 가고 말았다.

로에라는 2003년 케네디센터의 훈장을 받았으며,  컨트리음악학회로부터 "1970년대 최고의 아티스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2004년 고희(70세)의 나이에 새앨범 "Van Lear Rose"를 내어놓으며 로에라는 화려하게 부활,건재를 과시하였고,

이 앨범에 수록된 "Miss Being Mrs"와 "Portland Oregon"으로 2005년 그래미 최우수여성보컬상 후보에 올랐으며, 

"Van Lear Rose"앨범은 그래미 Best Country Album상을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Rock음악스타일인 "Van Lear Rose"와 "Portland Oregon"을 들어보면, 누가 그녀를 고희를 넘긴 할머니로 생각할까 싶다.
Rap음악과 소음공해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쿠스틱기타만의 반주로 되어있는 "Miss Being Mrs"는 마치 깊은

산속에 차가운 샘물을 마신듯 머리가 맑아짐을 느낄수 있게 해주는 단순하면서도 깨끗한 곡이라 여겨지는 곡이다.

오늘날,로에라는 자신의 음악출판사를 소유하고 있는 성공한 비지니스우먼으로서, 어린시절 고향의 풍경을 그대로 본뜬

관광목장과,  캠프그라운드를 운영하면서도 공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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