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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티스트 O ~ Z/[ X ]

X-JAPAN (엑스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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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발음 : [엑스 자팡].
일본음악을 전혀 모른다고 할지라도 이들의 음악한번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또한, 일본음악을 듣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들의 음악에 심취해 보지 않은 사람이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너무나도 유명하고 너무나도

전설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일본의 비쥬얼 그룹 X-JAPAN.

 

현지인 일본에서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식적인 루트가 없는 국내에서 그 인기와 열기가 더욱 열광적이고 지속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국내 팬들의 그들에 대한 지지도와 정보 공유량은 정말 대단하다. '과연 더 이상 국내에서 X JAPAN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모든 일은 관례가 있고 순서가 있는 법.

만의 한분(?)을 위해서라도 그들에 대한 소개는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 사이였던 팀 리더인 요시키와 보컬 토시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밴드 X를 결성한다.-요시키

인터뷰에 의하면 멋지고 긴 영어이름이 씬에 유행하던 당시, 오히려 짧은 영어단어가 콘테스트 등에서 더욱 임팩트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밴드 명명의 유례라고 한다. 뜻은 무한의 가능성을 의미.-

 

이 둘은 고등학교 졸업 후, 1985년경부터 본격적인 프로밴드로서의 활동을 결심, 동경에 있는 라이브 하우스를 기점으로 활동을 한다. 이들은 이해 6월 드디어 인디레이블인 DADA레코드사를 통해 이들 최초의 기념비적인 퍼스트 싱글 [I'll Kill You]를 발매하였다.
계속해서 7월에는 [HEAVY METAL FORCE 3]라는 인디즈 옴니버스 앨범 'BREAKTHE DARKENESS'라는 곡으로 참가하면서 이들의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간다.
이후, 직접 CD를 만들고 싶다는 의욕을 가지게 된 YOSHIKI는 개인이 아닌 회사명의가 발주가 쉽다는 사실을 알고 아예 스스로 인디 레코드사인 EXTASY Records를 만들어 버리는 엄청난 일을 한다. 이때 발매된 기념비적인 인디 싱글이 바로 [オルガスム(오르가즘)]이다.

 

당시, 엄청난 연습량과 라이브의 도를 넘는 격렬함 등으로 멤버 교체가 자주 있던 X였지만 결국, 87년 hide의 참가와

함께 그룹 X는 드럼의 YOSHIKI, 보컬의 TOSHI, 기타의 PATA 베이스의 TAIJI, 기타의 hide라는 라인업이 이루어진다.
평소 hide의 참가를 너무나도 갈망했던 X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멤버 모두가 공원으로 뛰쳐나가 다 함께 체조를 했다는 미소 짓게하는 전설-일본인들은 그들의 일화를 전설이라 표현한다-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1988년 4월 EXTASY Records를 통해 드디어 이들의 첫 번째 앨범 [VANISHING VISION]이 발매된다. 비록 메이저 발매는 아니었지만 세상에 정식적으로 내놓은 이들의 기념비적인 퍼스트 앨범이었다.
곧이어 이듬해인 89년에는 3월 시부야 공원당에서 메이저 데뷔 라이브를 열고, 4월에는 이들의 두 번째 앨범이자 메이저 퍼스트 앨범 [BLUE BLOOD]를 CBS 소니를 통해 발매하면서 공식적인 이들 대망의 메이저 데뷔를 마친다.

 

YOSHIKI의 "아무리 좋은 노래를 만들어도 들려주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그 노래는 빛을 발 할 수 없다.", hide의 "사운드뿐이 아닌 시각적인 자극" 등의 마인드와 함께 탄생한 당시는 생소했던 개념 비쥬얼. 그렇기에 음악과 외적인

면 모두를 만족시키던 이들의 인기는 무서운 기세와 빠른 전개로 진행되었다.
91년 7월 CBS 소니를 통해 발매한 2번째 앨범 [JEALOUSY]는 전작으로부터 2년 3개월이라고 하는 엄청난 제작기간과

팬들의 기대치가 정점으로 결합하면서 오리콘 차트에서 첫 등장 1위, 100만장을 넘는 성공적인 세일즈를 기록했고, 93년 8월에는 30분이 넘는 곡 하나로 앨범을 장식했던 불멸의 대작 [ART OF LIFE]를 내놓으며 언제나 찬반 양론으로 엇갈리며 X를 혹평하던 일부 평론가들에게 보란 듯이 그들의 실력을 입증했다.

 

당시로는 엽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퍼포먼스와 돌출 행동 등이 보수적인 평론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그들의 음악적 실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안에 92년 1월 [東京돔 3Days]를 끝으로 베이스의 TAIJI가 돌연 그룹을 탈퇴하게 되고 동년 5월 그 빈자리는 Heath에 의해 메꾸어지면서 X-JAPAN 해체 전까지의 완벽한 라인업이 구성된다.  

 

또한, 1992년 8월 25일에는 뉴욕 록펠러 센터에서 이들은 세계 진출 선언이라는 야심찬 기획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다. 이로 인해 앞으로 발매되는 음반은 일본에서는 EAST WEST, 그 밖의 나라에서는 워너 뮤직 인터내셔날을 통할 것을 계약한다. 그리고 이날 X는 베이시스트로 히스를 영입한 것을 정식으로 발표한다.

 

X가 이처럼 세계진출을 계획했을 무렵, 한가지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이미 미국에 동명의 밴드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X는 밴드명의 개명을 결정하게 되고 처음에는 일본에서 온 밴드라는 의미로 'X from JAPAN'을 거쳐, 드디어 세상에 알리게 되는 정식 그룹명 'X JAPAN'을 동년 10월 14일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식을 줄 모르는 그들의 인기와 열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갔고 92년 YOSHIKI의 솔로 워크 스타팅과 함께 불붙기

시작한 멤버 개개인의 솔로 활동 또한 꾸준하게 이루어져갔다. 이처럼 멤버 개개인의 솔로 활동, 그룹으로서의 전국

투어, 비디오와 싱글 발매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세월을 보내고 있던 X JAPAN은 96년 11월 4일 드디어 그들의 메이저 세 번째 정규앨범 [DAHLIA]를 발매한다. 정규 앨범으로는 무려 약 5년 4개월이라고 하는 엄청난 시간이 지나 발매된

작품이었다.

 

이렇듯 그칠 줄 모르는 인기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그들의 활동에 돌연 일본열도를 슬픔에 잠기게 하는 충격적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 소문으로만 돌고 있었던 보컬 토시의 그룹 탈퇴 소식과 함께 X JAPAN의 해체를 알리는 긴급 기자회견이 1997년 9월 22일 동경 미나토구에 있는 호텔 토쿄에서 열렸다. 12월 31일 도쿄 돔 라이브 [최후의 밤]을

끝으로 X-JAPAN은 해산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자회견장에는 토시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만이 모였다. 이날 인터뷰 중 토시가 빠진 이유에 대해 YOSHIKI는 이렇게 대답했다. "토시는 더 이상 X-JAPAN의 멤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997년 12월 31일 영원불멸의 존재일 것만 같았던

X JAPAN은 아쉽게도 그렇게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우리들에게 전설과 신화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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